명랑한정치이야기

철도민영화를 고민하게 한 불쾌한 기차여행

71년생 권진검 2012. 9. 1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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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도 훨씬 전, 당시 온가족이 명절을 위해 큰집을 가는 길은 자가용이 없었을 시절이라 늘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전으로...전쟁이 아닐 수가 없었던 아련한 기억이 있습니다.

5가족이 기차표라도 구하지 못한 경우에는 전쟁을 불사하는 귀향 행렬에서 무척이나 힘들었던 그런 때였죠.

아버지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명절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차례나 성묘는 가야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으셨고, 20년 전부터는 자가용을 타고 서울-대전간 12시간이 넘게 걸려 큰집 아파트 주차장에서 새벽잠을 자고 아침에 큰집에 올라갔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이젠, 소위 KTX가 우리 대한민국을 1일 생활권으로 만들었고, 저의 아련한 큰집행 에피소드는 이젠 젊은 사람들에게는 거짓말 같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기관차를 타고 갔던 성묘길, 다소 혜택받은 귀경길

 

 

30여년 전, 국민학생 아니 초등학생 시절, 큰집 대전에서 선산이 있는 충남 강경까지 가는 성묘길은 고역이었습니다.

때론, 기관차 난관에 매달려 신나게 야호를 부르며 다녔던 성묘길이었지만, 터널을 만나면 벌써 50대, 환갑을 넘은 큰집 형들의 옷깃속에 얼굴을 묻으면서 두려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외삼촌께서 철도청에 계셨기에 귀경길에서는 큰 도움을 받았었지요.

외삼촌께서 직접 대전역에서 열차에 올라, 콩나물 시루같았던 객실내에서 자리까지 명쾌하게 정리해주시고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해주셨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그 때는 그것이 엄청난 자랑스러움으로 여겨졌고, 가끔 명절에 티켓팅이 약간은 손쉬웠던 특권아닌 특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0년 후, 2012년 왜 이리 기차여행은 불편할까?

 

 

40년 가까이 대전아래로는 가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인생이었지만, 어쩌다 전라도 광주여자랑 결혼을 하는 바람에 지금은 서울 외지인으로서 광주에 4가족이 둥지를 틀고 살고 있습니다.

이젠 대전이 아니라, 서울이 명절에 다녀야 할 귀성길의 목표가 됩니다.

꼭 명절이 아니라도 일 때문에 서울을 오고가는 일이 잦은 요즘입니다.

6살, 4살 두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어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기차를 타고.

평일 점심 때라, 호남선이라, KTX편은 3시간 간격으로 뜨문뜨문,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죠.

4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여행, 학교에서 막 수업을 끝내고 나온 아내를 픽업해서 오른 서울행이기에 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어, 늘 이용했던 4호차 열차까페에 가서 요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4시간 동안, 쫄쫄 굶고 서울로 오다

 

 

이런 안내문 하나에 썰렁했던 열차까페.

옆의 자판기에는 물과 음료수뿐...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4시간을 용산역까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오후 1시...어른들이야 물을 마시며 허기진 배를 달랬지만,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치는 어린 아이들.

그나마 가방에 있었던 과자 몇조각과 마X쮸 몇개로 조금만 참자고 달랬습니다.

억울한 사람은 다음부터는 비싼 KTX를 타라는 메시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무궁화호에는 이런 열차까페가 있기에 KTX처럼 홍익회의 구루마가 다니지 않은 것은 최근 잦았던 기차여행에서 이미 습득한 사실이죠.

지나가는 열차 승무원 아저씨게 문의를 했지만, "오늘은 열차까페에 직원이 없다" 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4가족이 적지 않은 운임을 내고 열차에 올랐는데...조금 화가 났습니다.

 

비단, 이번만은 아니기에 더욱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값비싼 KTX를 탔을 때에도 서비스가 좋지만은 않았던 기억이 많습니다.

아내없이, 어린 두 아이들 때문에 좌석을 신경써서 마련하기 위해서 기차역 발매 담당자에게 "어린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 좌석을 편하게 끊고 싶다. KTX에 마련된 가족형 동반석으로 주세요".

언젠가 전남 장성역 담당자가 "보통 평일 동반석으로 발매를 하면 2좌석의 맞은 편 좌석은 주말이나 승객이 많은 경우에는 표를 팔지 않고 비워둡니다. 좁은 동반석에 4명이 빽빽하게 앉아 가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죠" 라는 귀뜸을 들었었지요.

당시 막내가 3살이어서 좌석을 2개만 끊고 동반석에 몸을 실은 저희 3가족은 3개의 좌석을 끊지 않았음을 후회했죠.

천안도 가기 전에 무릎이 닿은 반대편 좌석에 몸집 큰 2사람이 티켓팅을 하고 승차했고, 저희 3부자는 2좌석으로 몰려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불편하게 집으로 돌아왔었습니다.

좌석 하나를 아끼려다가 겪은 불편함이라고 자책할 수도 있지만, 이런 배려없는, 앞뒤 말이 다른 티켓팅에 조금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종이컵 하나만 주시겠어요?

 

 

또 한번의 상황.

작년, 아내없이 아이들과 또 KTX 서울행에 몸을 실었습니다.

도저히 통제 불가능한 두 녀석들과 씨름을 하다가, 목이 마르다는 둘째에게 물을 한병 사줬습니다.

생수병 주둥이는 아이가 물을 마시기에는 조금 불편한 모양이었습니다.

객차 사이에 있던 간이 까페의 직원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아이가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종이컵 하나만 주실 수 있습니까?"

직원 왈..."종이컵 없습니다"

30초도 안되서 승객 중 한분이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했고, 그 직원은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 몇천원 받고 승객에게 건넸었습니다.

당시, 머리 꼭지가 돌아서 날라차기를 하려다가, 나도 몇천원 내고 커피 한잔 먹으려다가 아...참자 하고,,,,아이가 흔들리는 열차에서 주둥이를 잘 못 들이대서 흘렸던 바닥의 물을 닦고 자리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제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내는 어제 0교시부터 기차에 오를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더욱 배가 고팠던 상황이었죠.

위의 에피소드를 모두 알고 있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래서 철도민영화에 나는 줄곧 찬성한다고 말하는 거야. 경쟁이 붙으면 서비스에 질이 무시무시하지. 우리가 자주 애용했던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비행기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

저희 부부가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면 지불했던 100만원이 넘는 비행기삭과 3만원 안쪽의 열차삭을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서비스의 차원이 너무 다릅니다.

철고, 철전, 대학, 대학원까지 나와 성골 철도인으로서 철도공단 이사장까지 바라보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고 싶더라구요.

열차 속에서 내다보였던 "수서발 KTX XXX-OOO구간 지반공사" 라는 팻말을 바라보며, 수서발 KTX라도 민영화가 되어서 지금의 운영주체보다 훨씬 더 경쟁력있는 서비스로 고객을 감동의 도가니탕으로 만들기를 조금 빌었습니다.

비록, 그 운영주체가 대기업 손으로 넘어가더라도요.

할인권도 없이 돈 다내고 다니는 기차여행은 앞으로도 늘 불쾌한 마음으로 임하게 될까봐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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