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부부이야기

건강검진 안하시는 칠순 아버지의 찡한 속마음

71년생 권진검 2012. 3.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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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제 칠순을 거쳐 팔순의 나이로 접어들고 계십니다.
시간이 이렇게 덧없이 흘러감에 막내아들로서 안타까움이 앞섭니다.

아이들이 커가고 있는 만큼 부모님은 점점 쇠약해지시는 것을, 부모님들도 앞서 경험하셨겠죠.

그래도 아직까지 용돈벌이로 일을 하고 계신 아버지께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친구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 현실에 어떤 생각을 하실까요?


지난해, 아버지 생신잔치에서......


누나 가족, 형 가족, 그리고 막내인 저희가족 모두 모여 아버지 생신을 기념으로 부페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자식, 며느리, 사위는 아버지의 건강이 어떠신지 여쭤보았습니다.

약간의 혈압이 있으신 아버지는 혈압약을 꾸준히 드시면서 일도 하시고...소식하시고...일요일 어김없이 등산을 다니십니다.

순간, 매형이 건강검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짤짤한 검사는 몰라도 제대로 된 건강검진은 일부러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매형이.....건강검진을 주기적으로 꼭 받으셔야 된다고......심각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매형은 모르죠...피를 나눈 저는 예전부터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떠나시는 친구분들....


기억으로는, 아버지의 친한 고교동창이자 은행 입사동기분들은 40대에서부터 돌아가시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정년퇴임을 하시고 갑자기 일을 못하시는 친구분들이 퇴임 직후 여러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일생을 몸바쳐 일하고 일터를 떠나는 허탈감과 무료함으로 벌어졌던......당시 사회적인 현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일찌감치 따 놓으신 첫회 중개사 자격증으로 아직까지 용돈벌이를 하시면서 건강을 이어가시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시각으로 표현해 보면,

아직 세상에 남아있던 친구들이나 주위사람들이 열심히 건강검진을 받는다.

그러다가 중병에 걸리면.......예외없이 병원신세를 지게 되어 있다.

병원신세를 지면....먹고 싶은 음식도...담배는 커녕...가끔 드시는 약주도....일요일에 가는 등산도 못간다.

그렇게 병원에 입원한 친구들....1년....길면 몇년안에....병원에서 죽어나가더라.....


나는 건강검진으로 병을 알아내고 병원에 가느니....차라리 모르고 살다가 한순간에 가겠다.

할 수 있는데까지 일하고....먹고 싶은 음식...술....등산....모두 즐길 것이다.

담배도 하루에 5개만 필 수만 있다면....20년전 끊은 담배도 다시 피우고 싶다.

병원비도 절약하고, 자식들 고생 안시키고.......그래서 나는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다.


뭐라고 할 말도...,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순간, 다들 할말이 없었습니다.
틀린 말도 아닌 것이....사람을 벙어리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지레짐작으로 대충 알고 있었지만, 직접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좀 마음이 그랬습니다.

막내아들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올 아버지 생신에는 6살, 4살 두아이와 씨름하며 서울에 올라가서 가족들과 짧은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점점 약해지시는 아버지를 위해서.....제가 할 수 있었던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이렇습니다. 그냥 저만의 생각입니다.

막내로서 아들 둘 낳았으니....표현은 안하시지만 그래도 대를 이었다는 생각으로 흐뭇해 하실 것 같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두 아이를 낳았지만, 당시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으로 36대손 돌림자를 넣어 두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
못난 막내아들이 괜찮은 며느리 만나서....4가족이 잘 살지는 못하지만 알콩달콩 행복하게 산다.

명절 때나 가족행사 때에는 어김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상경한다. 아이들이 올라가면 일요일에 등산도 안가시고...빼꼼빼꼼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시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년에 한통 할까말까한 전화를 6개월에 한번씩 하도록 노력한다.
어머니한테는 주기적으로 하는데....아버지한테는 잘 안되네요.....부자지간이 원래 그런가 봅니다.

겨우 이런 것들 뿐이네요.

제가 아들 맞나 모르겠습니다.
30년 후......두 아들한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당했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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